집안일 하고 한 달 50만원 — 부모 집에 '취업'한 2030 전업자녀

집안일을 전담하는 전업자녀를 표현한 이미지

한눈에 요약

  • 무슨 일? 전업주부처럼 집안일을 도맡고 그 대가로 부모에게 매달 생활비를 받는 2030이 늘고 있습니다. 이들은 소셜미디어에서 스스로를 ‘전업자녀’라고 부릅니다.
  • 왜 중요? 길어지는 청년 취업난과 높은 주거비 부담이 겹치면서 나타난 현상입니다. 일하지 않는다는 자괴감 대신 역할을 찾으려는 선택이라는 해석과, 오래가면 고립될 수 있다는 우려가 함께 나옵니다.
  • 핵심 숫자/일정: 1529세 취업자 46개월 연속 감소(8월 14만3000명 감소), 청년 고용률 44.1%, 부모와 함께 사는 1934세 54.4%.

무슨 일이 있었나

조선일보가 15일 전한 26세 이모씨의 하루는 이렇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2년째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이씨는 아침 8시에 일어나 출근하는 부모님을 배웅합니다. 오전 10시까지는 청소와 빨래를 하고, 집 근처 스터디카페로 가서 오후 6시까지 공부합니다. 집에 돌아와서는 부모님이 퇴근하는 오후 7시에 맞춰 저녁상을 차립니다.

이씨가 집안일을 전담한 것은 석 달 전부터입니다. 그 대가로 부모님께 매달 50만원을 받습니다. 시험에 거듭 떨어지는 상황에서 부모님께 손만 벌리기가 미안했는데, 집안일을 하고 생활비를 받으니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는 것이 그의 설명입니다.

이런 청년들은 소셜미디어에서 자신을 ‘전업자녀’라고 부릅니다. 전업주부처럼 집안일을 맡는다는 뜻입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부모와 함께 사는 ‘캥거루족’과 비슷해 보이지만, 가사 노동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돈을 받는다는 점이 다릅니다.

독립했다가 돌아온 경우도 있습니다. 20대 박모씨는 3개월 전 다니던 스타트업에서 정리해고를 당한 뒤 충남 천안의 본가로 돌아왔습니다. 스타트업 월급으로는 서울에서 생활하기가 빠듯했는데, 지금은 월세 걱정 없이 용돈을 받으며 전업자녀로 지낸다고 합니다. 이렇게 독립했다가 경제적 이유로 부모 집에 돌아오는 청년을 ‘부메랑족’이라고도 부릅니다.

일상을 영상으로 남기는 청년도 있습니다. 26세 강모씨는 2024년 8월부터 6개월 동안 ‘전업자녀 생존기’라는 제목으로 브이로그 19편을 올렸습니다. 영상에는 설거지·밥 짓기·청소·빨래가 자신의 일과이기도 하다며 공감하는 댓글이 달렸습니다.

‘전업자녀’라는 말은 한국에서 처음 생긴 것이 아닙니다. 2023년 중국 소셜미디어에서 ‘취안즈얼뉘(全職兒女)’라는 표현이 먼저 퍼졌습니다. 부모와 함께 살며 청소와 식사 준비를 하고 생활비를 받는 청년을 가리키는 말로, 당시 중국의 청년 실업률이 20%를 웃돌 만큼 취업난이 심했던 시기에 등장했습니다.

숫자로 보는 청년 고용과 독립

지표 수치 출처·시점
15~29세 취업자 전년 같은 달보다 14만3000명 감소(46개월 연속 감소) 국가데이터처, 8월
청년 고용률 44.1%(1.0%포인트 하락) 국가데이터처, 8월
전체 취업자 18만4000명 증가(3월 이후 최대 폭) 국가데이터처, 8월
청년 실업률 5.4%(2년 전보다 1.3%포인트 상승) 조선일보 보도
부모와 함께 사는 19~34세 54.4% 국무조정실, 2024년 청년의 삶 실태조사
미취업 기간이 1년 늘 때 ‘쉬었음’ 확률 4.0%포인트 상승, 적극 구직 확률 3.1%포인트 하락 한국은행, 올해 초 분석

배경 — 왜 부모 집에서 ‘일’을 찾나

가장 큰 이유는 취업난입니다. 8월 전체 취업자는 1년 전보다 18만4000명 늘어 3월 이후 가장 크게 증가했지만, 15~29세 청년 취업자는 오히려 14만3000명 줄었습니다. 청년 취업자 감소는 46개월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전체 고용이 좋아져도 청년에게는 그 온기가 닿지 않고 있는 셈입니다.

여기에 고물가·고금리로 주거비 부담이 커지면서 독립을 포기하는 청년이 늘었습니다. 국무조정실의 ‘2024년 청년의 삶 실태조사’에서는 만 19~34세 청년의 54.4%가 부모와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부모 세대에게도 나쁘기만 한 선택은 아니라는 반응이 있습니다. 맞벌이하는 50·60대 부부가 늘었고, 고령화로 가족 중 돌봄이 필요한 노인도 많아졌습니다. 자녀가 집에서 놀기보다는 가사와 돌봄을 도우며 독립을 준비하는 편이 낫다는 것입니다.

전문가들의 해석은 엇갈립니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저성장과 취업난 속에서 청년들이 ‘일이 없는 사람’이라는 자괴감 대신 ‘집안일 담당’이라는 역할을 스스로 부여해 자존감을 지키려는 심리라고 봤습니다. 반면 서이종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부모에게 기대는 삶은 오래 지속될 수 없다며, 이런 생활이 길어지면 주변 사람들 앞에서 위축되고 고립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나에게 미치는 영향

취업을 준비 중인 청년: 집안일이라는 역할이 하루의 리듬을 잡아 주고 부모에게 덜 미안하게 해 주는 효과는 분명 있습니다. 다만 한국은행 분석처럼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기간이 길어질수록 구직을 멈추고 ‘그냥 쉬는’ 상태로 넘어갈 가능성이 커집니다. 전업자녀 생활을 한다면 시험 날짜나 지원 계획처럼 끝나는 시점을 함께 정해 두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다 큰 자녀와 함께 사는 부모: 맞벌이 가정이라면 가사 부담을 덜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부모의 소득도 언젠가 끊긴다는 점에서 이 방식이 오래 이어지기는 어렵습니다. 생활비를 주고받는다면 자녀의 독립 계획을 함께 이야기하는 계기로 삼는 편이 좋습니다.

청년 문제를 지켜보는 사회: 전체 취업자는 늘어나는데 청년만 줄어드는 흐름이 4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전업자녀라는 말은 개인의 선택처럼 보이지만, 그 뒤에는 청년 일자리와 주거비라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캥거루족과는 무엇이 다른가요?
캥거루족은 성인이 된 뒤에도 독립하지 않고 부모와 함께 사는 사람을 뜻합니다. 전업자녀는 여기에 더해 청소·빨래·식사 준비 같은 가사 노동을 맡고, 그 대가로 부모에게 생활비를 받는다는 점이 다릅니다.

Q. 이 말은 어디서 시작됐나요?
2023년 중국에서 ‘취안즈얼뉘(全職兒女)’라는 표현이 먼저 퍼졌습니다. 청년 실업률이 20%를 넘던 시기였고, 한국에서도 청년 취업난이 길어지면서 비슷한 모습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Q. 청년 고용 상황은 얼마나 나쁜가요?
8월 기준 15~29세 취업자는 1년 전보다 14만3000명 줄어 46개월 연속 감소했고, 고용률은 44.1%로 1.0%포인트 떨어졌습니다.

앞으로 지켜볼 것

  • 다음 달 발표될 고용 동향에서 청년 취업자 감소가 47개월째로 이어지는지.
  • 일도 구직도 하지 않는 ‘쉬었음’ 청년이 늘어나는지.
  • 청년 주거비 부담을 줄이는 정책이 독립 포기 흐름을 되돌릴 수 있을지.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