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아이 기차표값 500원 — 48년 만에 500만원을 들고 영등포역을 찾은 할머니

옛 기차표와 손편지 봉투를 표현한 이미지

한눈에 요약

  • 무슨 일? 80대 할머니가 지난달 26일 서울 영등포역을 찾아 직원들에게 자필 편지와 현금 500만원이 든 봉투를 건넸습니다. 편지 끝에는 ‘난곡동 할매’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 왜 중요? 1978년 돈이 없어 아들의 기차표를 사지 못했을 때 역장이 그냥 보내 준 일을 48년 동안 잊지 않고 있다가 갚으러 온 것입니다. 역 직원들은 역사 게시판에 답장을 붙여 화답했습니다.
  • 핵심 숫자/일정: 1978년 10월 정읍→영등포 완행열차, 당시 아이 차비 500원, 2026년 8월 26일 전달한 돈 500만원.

무슨 일이 있었나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수도권서부본부는 14일, 지난달 26일 오전 한 80대 여성이 영등포역에 찾아와 손으로 쓴 편지와 현금 500만원이 담긴 봉투를 직원들에게 건넸다고 밝혔습니다.

편지는 아주 오래된 빚을 이제야 갚으려 한다는 말로 시작합니다. 할머니가 적은 사연은 48년 전인 1978년 10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할머니는 초등학생 아들과 함께 전북 정읍에서 완행열차를 타고 서울 영등포역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형편이 너무 어려워 자신의 표만 사고 아들의 표는 사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역장은 아이 차비로 500원을 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할머니 수중에 있던 것은 토큰 한 개뿐이었습니다. 할머니가 사정을 이야기하자, 역장은 그냥 가라며 두 사람을 보내 줬습니다. 할머니는 편지에서 그때 절을 하고 돌아서면서, 이 돈은 죽기 전에 꼭 갚겠다고 스스로 다짐했다고 적었습니다.

그 다짐은 긴 세월 마음의 빚으로 남았습니다. 할머니는 많이 늦었고 많이 부족하지만 조금이라도 받아 달라며, 그동안 정말 감사했다는 말로 편지를 맺었습니다. 서명은 ‘난곡동 할매 올림’이었습니다. 맞춤법이 군데군데 틀린 편지였지만 한 글자씩 정성껏 눌러쓴 흔적이 그대로 담겨 있었습니다.

할머니가 48년 만에 역을 다시 찾은 데에는 아들의 죽음도 계기가 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그날 표 없이 함께 기차를 탔던 그 아들이 암으로 투병하다 최근 세상을 떠났고, 할머니는 오래 품어 온 빚을 갚기 위해 편지와 돈을 마련했다고 합니다.

코레일 측은 처음에는 돈을 받을 수 없다며 완강히 사양했습니다. 하지만 할머니가 꼭 영등포역에 주고 싶다고 거듭 말해 결국 받게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할머니는 자신의 신원이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직원들은 고마움을 전할 방법을 고민하다 역사 안 게시판에 답장을 붙이기로 했습니다.

숫자로 보는 48년

항목 내용
그날 1978년 10월
구간 정읍 → 영등포, 완행열차
역장이 말한 아이 차비 500원
할머니가 가진 것 토큰 한 개
다시 찾은 날 2026년 8월 26일 오전
건넨 것 자필 편지와 현금 500만원
걸린 세월 48년
금액 비교 500만원은 당시 차비 500원의 1만 배
돈의 처리 코레일 기타수익으로 처리 후 사용 방안 검토

배경 — 직원들이 붙인 답장

영등포역 직원들은 역사 게시판에 ‘난곡동 할매께’라는 제목의 답장을 붙였습니다. 직원들은 할머니가 건넨 용기와 따뜻한 마음 덕분에 하루하루를 선물처럼 보내고 있다며, 살면서 이렇게 깊은 깨달음을 얻은 적이 없다고 적었습니다.

답장에는 일하는 사람으로서의 다짐도 담겼습니다. 역무원으로서 고객 한 사람 한 사람을 어떤 마음으로 대해야 하는지 다시 생각하게 됐고, 할머니가 보여 준 마음을 오래 잊지 않겠다는 내용입니다. 자신들도 누군가에게 따뜻한 마음과 좋은 기억을 남기는 사람이 되겠다는 약속으로 답장은 끝납니다.

코레일 수도권서부본부 관계자는 액수를 떠나 따뜻한 마음을 되새길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구성원 모두가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다짐했다고도 덧붙였습니다. 할머니가 전한 500만원은 회계상 기타수익으로 처리한 뒤, 어떻게 쓸지 검토할 예정입니다.

이 이야기가 많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금액 때문만은 아닙니다. 1978년의 역장은 규정대로라면 차비를 받아야 했지만 어려운 모자의 사정을 듣고 그냥 보내 줬습니다. 그 짧은 결정 하나가 한 사람에게 평생의 약속이 됐고, 반세기 가까이 지나 같은 역의 직원들에게 다시 돌아왔습니다. 당시 역장이 누구였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날의 배려는 편지와 답장으로 역 게시판에 남게 됐습니다.

나에게 미치는 영향

매일 사람을 응대하는 일을 하는 사람: 영등포역 직원들은 할머니의 편지를 받고 스스로의 일하는 태도를 돌아봤다고 했습니다. 창구에서 건넨 한마디, 사정을 들어 준 몇 분이 상대에게는 수십 년 동안 기억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 사례입니다.

미뤄 둔 감사 인사가 있는 사람: 할머니는 스스로 많이 늦었다고 했지만, 48년 뒤에 전한 고마움은 받는 사람들에게 큰 울림이 됐습니다. 감사를 전하기에 너무 늦은 때는 없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공공기관에 마음을 전하고 싶은 사람: 이번처럼 기관이 개인의 돈을 받게 되면 담당자 개인이 아니라 기관의 수익으로 처리되고, 쓰임새는 따로 정해집니다. 코레일도 500만원을 기타수익으로 처리한 뒤 사용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할머니는 어떤 분인가요?
80대 여성이라는 것 외에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할머니가 신원 공개를 원하지 않았고, 편지에는 ‘난곡동 할매’라고만 적혀 있었습니다.

Q. 500만원은 어디에 쓰이나요?
코레일 수도권서부본부는 이 돈을 기타수익으로 처리한 뒤 사용 방안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구체적인 용도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Q. 1978년 당시의 역장은 찾았나요?
보도된 내용에는 당시 역장이 누구인지, 연락이 닿았는지에 관한 정보가 없습니다.

앞으로 지켜볼 것

  • 코레일이 할머니가 전한 500만원을 어떤 곳에 쓰기로 정하는지.
  • 영등포역 게시판의 답장이 앞으로 어떻게 보존되는지.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