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년을 사는 털 없는 쥐 100여 마리가 대전에 왔다 — 벌거숭이두더지쥐 국내 첫 연구 사육

벌거숭이두더지쥐를 표현한 이미지

한눈에 요약

  • 무슨 일? 노화 연구계에서 주목받는 동물인 벌거숭이두더지쥐가 지난달 대전 기초과학연구원(IBS)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국내 연구실에서 이 동물을 키우는 것은 처음입니다.
  • 왜 중요? 벌거숭이두더지쥐는 수명이 32년으로 비슷한 크기 생쥐의 10배가 넘고, 암에 걸리지 않는 동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왜 그런지 분자 수준의 인과관계는 아직 많이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 핵심 숫자/일정: 수명 32년, 산소 없이 18분 버팀, 미국 일리노이대에서 기증받은 100여 마리.

무슨 일이 있었나

조선비즈가 15일 전한 바에 따르면, IBS 유전체교정연구단은 지난달 국내 연구기관 가운데 처음으로 벌거숭이두더지쥐 전용 사육시설을 만들었습니다. 이 동물은 국내 동물원 세 곳에서도 볼 수 있지만, 연구실에서 키우는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전 세계에서 이 동물을 연구하는 곳도 손에 꼽을 정도로 적습니다.

사육실의 투명한 플라스틱 상자 안에서는 손바닥보다 작은 회갈색 동물들이 쉴 새 없이 움직입니다. 생쥐처럼 보이지만 털이 하나도 없고, 노란 앞니가 입 밖으로 튀어나와 있으며, 눈은 거의 퇴화했습니다. 겉모습은 볼품없지만 과학계에서는 장수 연구의 스타로 꼽힙니다.

시작은 지난해였습니다. IBS 연구자 3명이 해외 연구 교류 프로그램으로 미국 시카고 일리노이대(UIC)를 찾아 토머스 박 교수와 로셸 버펜스타인 박사를 만났습니다. 버펜스타인 박사는 평생 벌거숭이두더지쥐를 연구해 온 학자입니다. 연구진은 원래 몇 마리를 분양받기 위해 2주 동안 사육법을 배우러 갔는데, 은퇴를 앞둔 두 사람이 자신들이 키우던 100여 마리를 통째로 기증했습니다. 그렇게 1년 만에 전용 사육실까지 갖추게 됐습니다.

키우는 일은 생쥐와 전혀 다릅니다. 자연에서 이 동물은 굴을 여러 개 이어 새끼를 키우는 방, 먹이 창고, 화장실까지 따로 만듭니다. 연구진은 투명 상자들을 파이프로 연결해 이런 구조를 흉내 냈습니다. 또 벌거숭이두더지쥐는 포유류이면서도 스스로 체온을 조절하지 못합니다. 땀샘이 없어 땀으로 열을 식히지 못하고, 피하지방도 없어 추위에 약합니다. 그래서 사육실의 온도와 습도를 땅속처럼 24시간 일정하게 유지합니다.

한 상자에는 바닥에 온돌처럼 열선을 깔았는데, 동물들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곳이 바로 여기였습니다. 연구진은 이 공간을 ‘사우나’라고 부릅니다. 먹이는 한국식으로 바꿨습니다. 야생에서는 뿌리채소를 주로 먹고 미국에서도 고구마를 먹였는데, IBS에서는 미국 것보다 훨씬 단 국산 고구마와 포도·복숭아·사과를 줍니다. 먹이 차이가 성장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도 살펴볼 계획입니다.

숫자로 보는 벌거숭이두더지쥐

항목 내용
서식지 케냐·소말리아·에티오피아 등 동아프리카의 건조한 사바나
몸길이 / 몸무게 810㎝ / 3035g
수명 32년(비슷한 크기 생쥐의 10배 이상)
산소 없이 버티는 시간 18분
사회 구조 여왕 암컷 중심, 나머지는 생식 능력 없는 일꾼
IBS 사육 개체 미국 일리노이대에서 기증받은 100여 마리
사망 위험(버펜스타인 연구) 생후 6개월 이후 하루 사망 위험이 1만 마리당 1마리꼴로 거의 일정

배경 — 과학자들이 이 쥐에 열광하는 이유

벌거숭이두더지쥐는 오래 사는 것만으로 유명한 것이 아닙니다. 암에 걸리지 않고 통증도 잘 느끼지 못합니다. 산소가 사라지면 포도당 대신 과당으로 에너지를 만들 수 있어 산소 없이도 18분을 버팁니다. 땅속에서 수백 마리가 함께 살아도 질식하지 않는 비결입니다.

늙는 방식도 특이합니다. 버펜스타인 박사는 구글의 노화 연구 자회사 칼리코에 있던 2018년, 국제 학술지 ‘이라이프(eLife)’에 30년 동안 키운 3000여 마리의 기록을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생후 6개월 이후 평생 동안 하루 사망 위험이 1만 마리당 1마리꼴로 거의 변하지 않았다는 내용입니다. 사람은 30세 이후 8년마다 사망 위험이 두 배로 늘어난다는 ‘곰페르츠 법칙’(1825년 영국 수학자 벤저민 곰페르츠가 제시)을 따르는데, 포유동물에서 이 법칙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처음으로 확인한 성과로 꼽힙니다. 구글이 2013년 칼리코를 세우며 인간 수명을 500세까지 늘리겠다는 목표를 내건 것도 이 동물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같은 유전자가 사람과 정반대로 작용한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지난해 중국 과학자들은 학술지 사이언스에, 벌거숭이두더지쥐의 cGAS 단백질에 생긴 아미노산 변이가 DNA를 고치는 능력을 높인다는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사람에게서는 암과 관련된 단백질이 이 동물에서는 오히려 몸을 지키는 역할을 하는 셈입니다.

IBS의 목표는 이런 신비한 능력을 다시 확인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구본경 연구단장은 라디오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려면 겉모습만 볼 게 아니라 분해하고 다시 조립해 봐야 한다고 비유했습니다. 지금까지의 연구가 관찰과 비교로 상관관계를 봤다면, 유전학으로 원인과 결과를 밝히겠다는 것입니다.

그 도구가 ‘미니 장기’라 불리는 오가노이드와 유전자 교정입니다. 줄기세포를 입체로 키우면 실제 장기의 구조와 기능을 재현할 수 있어, 살아 있는 동물을 쓰지 않고도 유전자 기능을 반복해서 실험할 수 있습니다. 연구진은 이미 소장 오가노이드를 만들었고 위와 간 오가노이드도 만들 계획입니다. 자연적으로 늙는 과정을 보려면 수십 년이 걸리지만, 유전자 가위로 빠른 노화를 일으켜 사람·생쥐와 비교하면 장수와 항암에 관련된 유전자를 찾을 가능성이 생깁니다.

나에게 미치는 영향

노화와 장수 연구에 관심 있는 사람: 벌거숭이두더지쥐 연구는 아직 사람의 수명을 늘리는 방법으로 이어진 것이 아닙니다. 연구진도 연구가 이제 출발선을 막 지났다고 말합니다. 다만 국내에서도 이 동물을 직접 키우며 유전자 수준의 연구를 시작했다는 점에서, 앞으로 나올 논문을 지켜볼 이유가 생겼습니다.

과학 소식을 즐겨 보는 사람: IBS는 동물 여러 종의 오가노이드를 모은 ‘오가노이드 동물원’도 만들고 있습니다. 구본경 단장은 동물 20종 정도의 오가노이드로 사이언스에 논문을 냈지만 게재되지 않았고, 이제 50종 넘게 만든 결과를 추석 이후 다시 제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중 3분의 1이 조류여서 조류인플루엔자처럼 사람과 새가 함께 걸리는 감염병 연구에도 쓸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 이 동물은 번식이 매우 까다롭습니다. 새 무리에서 첫 새끼를 보기까지 1년 넘게 걸린 사례도 있고, 다른 무리의 냄새가 나면 여왕이 수컷을 공격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짝짓기 1~2주 전에는 수컷을 다른 상자에 옮겨 냄새를 뺍니다. 눈으로는 암수 구별도 어려워, 연구진은 유전자 분석으로 성별을 가리는 방법을 개발할 계획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벌거숭이두더지쥐는 국내에서 볼 수 있나요?
국내 동물원 세 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연구실에서 키우는 것은 IBS가 처음입니다.

Q. 정말 늙지 않나요?
2018년 발표된 연구에서는 생후 6개월 이후 하루 사망 위험이 거의 변하지 않았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사망 위험이 커지는 일반적인 포유동물과 다르다는 뜻이지만, 그 원인은 분자 수준에서 아직 많이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Q. 이 연구로 사람의 수명이 늘어나나요?
현재는 원인을 찾는 기초 연구 단계입니다. 연구진은 오가노이드와 유전자 교정으로 사람·생쥐와 비교해 항암·장수 관련 유전자를 찾겠다는 계획을 밝혔을 뿐, 사람에게 적용할 성과가 나온 것은 아닙니다.

앞으로 지켜볼 것

  • 50종 넘는 동물 오가노이드 연구가 추석 이후 사이언스에 다시 제출돼 게재되는지.
  • IBS 사육실에서 번식에 성공해 개체 수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을지.
  • 위·간 오가노이드 수립과 DNA 손상 반응 비교 연구의 첫 결과.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