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뢰 탐지하다 찾아낸 1032g의 화통 —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화약무기가 나주에서 나왔다

옛 화약무기 화통을 표현한 이미지

한눈에 요약

  • 무슨 일? 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소가 2023년 나주 금성산 기슭에서 수습한 황자화통(黃字火筒)의 분석 결과를 9월 21일 공개했습니다. 고려 말~조선 초의 화약 발사무기입니다.
  • 왜 중요? 국내 화약무기 유물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에 만들어졌고, 출토 장소와 제작 시기, 제작 주체가 함께 확인되는 유일한 사례입니다.
  • 핵심 숫자/일정: 길이 23.75㎝, 구경 1.66㎝, 무게 1032g, 명문 한자 28자, 9월 23일~11월 22일 국립고궁박물관 공개.

무슨 일이 있었나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이 유물은 2023년 11월 나주 금성산의 미확인 지뢰지대에서 등산로 공사를 앞두고 지뢰 탐지 작업을 하다 우연히 발견됐습니다. 연구소는 3년간 과학적 분석과 전문가 자문을 거쳐 진위와 제작 시기, 역사적 가치를 확인해 왔습니다.

황자화통은 길이 23.75㎝, 구경 1.66㎝, 무게 1032g으로 개인이 들고 쓸 수 있는 소형 화기입니다. 화통은 화약을 터뜨려 화살이나 탄알을 쏘는 무기를 이르는 말로, 14세기 고려 말부터 조선 건국 직후인 15세기 초반까지 쓰였고 세종 이후에는 총통(銃筒)으로 이름이 바뀝니다.

결정적인 단서는 몸체에 새겨진 글자였습니다. 손잡이 나무를 끼우는 부분인 모병(冒柄)에 6열 27자, 총부리에 1자가 오목새김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판독된 내용은 정사년 12월에 황자화통을 만들었고, 무게는 1근 14량, 감독자는 녹사 안휴보, 장인은 석(石)이라는 것입니다. 총부리의 八(팔)은 제작 번호 또는 관리 번호로 추정됩니다.

숫자로 보는 황자화통

항목 내용
발견 2023년 11월, 나주 금성산(지뢰 탐지 중)
공개 2026년 9월 21일
크기 길이 23.75㎝, 구경 1.66㎝
무게 1032g(명문 기준 1근 14량)
명문 모병 6열 27자 + 총부리 1자
감독자·장인 녹사 안휴보, 장인 석(石)
제작 연대 후보 1377년(고려 우왕 3년) 또는 1437년(조선 세종 19년)
재질 구리·주석·납 청동 주조, 주석 10wt% 이내
전시 2026년 9월 23일~11월 22일 국립고궁박물관

배경 — 1377년인가, 1437년인가

명문에 적힌 정사(丁巳)년은 문헌 기록 등으로 미뤄 1377년(고려 우왕 3년)이나 1437년(조선 세종 19년)으로 볼 수 있습니다.

1377년은 최무선의 건의로 화통도감이 설치돼 국가 기구에서 처음 화약무기를 생산한 해입니다. 1437년은 화약무기 개량이 활발하던 세종 때로, 새 형태의 화기가 규격화된 1445년보다 앞섭니다. 연구소는 비교할 사료가 드물어 둘 중 하나로 확정하기는 어렵지만, 국내 화약무기 실물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의 것임은 분명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유물의 생김새도 이른 시기를 가리킵니다. 황자화통은 약통 안이 둥근 구조로, 화약과 발사체를 한 통에 넣어 쏘는 초창기 화기의 특징을 지녔습니다. 화약 폭발력을 발사체에 전달하려고 약통 앞부분에 나무 마개(격목)를 끼워 효율을 높인 세종 때 개량 화기와는 구조가 다릅니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화약무기로 거론된 것은 경희대 박물관이 1968년 구입한 고총통 2점이었습니다. 황자화통과 형태·크기·명문이 상당히 닮았지만 제작 연대나 출토 장소, 제작 주체가 확인되지 않아 정체가 불분명했습니다. 이번 발견으로 경희대 소장품들도 고려 말~조선 초의 비슷한 계열 화기라는 점이 분명해졌다고 기사는 전했습니다.

과학 분석이 말해 주는 것

연구소에 따르면 황자화통은 구리, 주석, 납을 주성분으로 하는 청동 주조품이며 주석 함량은 10wt% 이내로 조절됐습니다. 청동의 강도와 연성을 확보해 화약이 터질 때 화통이 깨지는 것을 막으려 한 것으로 보이며, 전통 화약무기의 성분 구성과 일치합니다. 미세조직에서는 제련 과정에서 남은 황, 규소, 은 같은 불순물도 검출됐는데, 당시 정련 기술의 한계를 보여주는 흔적으로 전통적인 청동 주조 방식으로 만들어졌음을 뒷받침합니다.

이름의 황(黃) 자는 천자문 글자 순서로 사물을 분류하던 고려·조선의 방식에 따라 붙은 것입니다. 명문의 감조(監造)는 제작 감독자, 녹사(錄事)는 관서 실무를 맡던 관직을 뜻합니다. 병기 제작을 맡은 군기감에 녹사가 배치된 기록이 고려 말과 조선 시대 모두 전해져, 국가가 무기의 감독과 제작을 체계적으로 관리했음을 보여줍니다.

나에게 미치는 영향

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 최무선의 화약무기 개발이라는 교과서 속 사건과 연결되는 실물 유물입니다. 만든 시기, 무게, 감독자와 장인 이름까지 남아 있어 당시 무기 제작 관리 체계를 보여줍니다.

전시를 보려는 사람: 황자화통은 9월 23일부터 11월 22일까지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공개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어떻게 발견됐나요?
2023년 11월 나주 금성산 미확인 지뢰지대에서 등산로 공사를 앞두고 지뢰 탐지 작업을 하다 우연히 수습됐습니다.

Q. 정확한 제작 연도는 확정됐나요?
아닙니다. 명문의 정사년이 1377년인지 1437년인지는 비교 사료가 드물어 확정하기 어렵다고 연구소는 밝혔습니다.

앞으로 지켜볼 것

  • 제작 연대를 좁히는 후속 연구와 비교 유물 조사.
  • 국립고궁박물관 전시에서 공개되는 추가 분석 내용.

참고 자료